1856~1861 東輿圖 @大塚
▐ 이 대총에 대해 신증동국여지승람(1530)에는 '江東縣의 북쪽으로 30리에 있으며 刀亇山에 있는데 속담에 옛 황제의 무덤(古皇帝墓)이라 전한다'고 되어 있다. 용비어천가(1447)에서 국내성을 大金皇帝城으로 인식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. 고려가 망하면서 발해와 요나라를 거쳐 금나라에 점유되었던 지역의 고려 유적을 왕고인들은 금나라의 것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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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1856~1861 東輿圖 @大塚
▐ 신증동국여지승람(1530)에 江東縣의 서쪽으로 3리에 있으며 둘레 4백 10척으로 속담에 檀君墓라 전한다고 되어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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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1145 三國史記 東明 - 동명왕릉 날조와 단군릉 날조
추모왕의 무덤은 졸본에 있었지만 고려계승을 내세운 왕건에게 고려 시조의 무덤은 서경에 있어야 했다. 동명왕릉이 날조되었다면 의심의 눈초리는 왕건에게 보낼 수 밖에 없다.┆단군은 실존하지 않았던 인물이지만 공산주의의 붕괴로 새로운 통치 이념이 필요했던 김일성에게 민족 시조의 무덤은 평양에 있어야 했다.┆동명왕릉과 단군릉 모두 릉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고 고고학자에게 발굴하게 하면 둘다 낙랑고려의 무덤으로 판정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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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0427 三國史記(1145) ❽平壤
移都平壤² 도읍을 평양으로 옮겼다. ▐ 고려는 342년에 모용선비의 침공을 받아 도읍인 丸都城이 파괴되자 이듬해에 도읍을 平壤²東 黄城으로 옮긴 바 있다. 그러나 371년에 백제가 平壤²城에 침공해오고 이를 막다 고구원왕이 죽자 도읍을 다시 國內로 옮겼다. 399년에는 광개토왕이 平穰²에 행차해 내려갔다가 신라가 보낸 사신을 만나기도 했다. 따라서 여기에 나오는 平壤은 그러한 역사의 맥락에서 볼 때 대동강 유역에 있는 平穰²이라고 보아야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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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1856~1861 東輿圖 @大城
▐ 586년에 도읍을 옮긴 長安城을 평양 동북쪽에 있는 大城으로 보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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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1884 地圖 @朝天石
▐ 제왕운기(1287)에 추모왕 이야기가 얽힌 바위섬으로 나오는 朝天石이 표시되어 있다. @조천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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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1834 靑邱圖
247년에 도읍을 옮긴 平壤城을 지금의 평양성으로 보았고, 343년에 도읍을 옮긴 平壤東黄城을 평양 목멱산으로 보았으며, 586년에 도읍을 옮긴 長安城을 지금의 대성산성으로 보았다. @平壤 @黄城 @황성 @長安城 @장안성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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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1834 靑邱圖 @九龍山
▐ 九龍山에 있는 옛 성을 586년에 도읍을 옮긴 長安城으로 보았다. @구룡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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